할머니의 쓰봉

생각 2016. 5. 8. 23:59

오늘 시골을 떠나올 때, 할머니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. 감정이 복잡하신 듯 보였다. 마치 힘없는 아기처럼 보였다. 구십평생 정정하고 남한테 신세지고 살아본적 없는 할머니에게 이 시간들은 너무 버거운 것일지도 모르겠다.

오늘 아침 할머니는 쓰봉을 찾았다. 난 쓰봉이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몰라 물었다. 할머니 쓰봉이 뭐에요. 할머니는 "쓰봉이 이게래(바지를 가르키며)" 그제야 알았다. 쓰봉이 바지인걸. 일제강점기때 들어온 일본말의 잔재였다.

그 어려운 시기도 이겨내시고 한평생 자식만 바라보고 살아오신 우리 외할머니가 아프다. 나는 할머니가 안아프고 오래오래 사실줄 만 알았다. 난 어렸을 적부터 외할머니를 참 좋아했다. 왠지 모르게 다른 사람보다 푸근하고. 순수하고. 할머니가 만든 음식은 다 맛있었다. 소박하고 검소하신 할머니가 좋았고. 그래서 할머니가 계신 시골도 좋았다.

아직까지도 할머니가 이렇게 아픈게 잘 실감나지 않는다. 고마 기운 차리시고 털고 일어나뿌면 좋으련만.
할머니는 "이래 살믄 우야노" 만 하신다.

"진지 잘 잡수시고 , 약 잘 드시면 기운 금방 차리실 거에요. 또 올게요" 하고 내려온 내 마음이 너무 무겁다. 할머니 얼굴이 너무 생생하다.

손주인 내맘도 이렇게 아픈데 엄마는 오죽할까.
어버이날. 엄마도 나도 너무 슬프다.

'생각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모든 것엔 때가 있다?  (0) 2022.04.29
자폐 스펙트럼 드라마/다큐  (3) 2021.07.16
블로그 이미지

제인 34

영국에서의 보통날

,